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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달밤과 경주의 밤

기사승인 2020.05.15  16: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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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E.H Carr가 정의하지 않았더라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닌 쌓여가는 시간들 속에 살고 있다. 곧 현재의 우리가 사유하고 회의하고 실행하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역사의 조각이 되어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과거를 읽고 현재에 대한 회의와 반성, 배려가 없는 세대는 긴 역사 속 한 지점에 오점을 남기는 잘못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신라에서 경주로 이어지는 달 속에서 한 단면을 살펴본다.

  신라인과 우리의 ‘달사랑’을 보자.

  월성(月城), 월지(月池), 월정교(月精敎), 월상루(月上樓), 신월성(新月城), 만월성(滿月城),함월산(涵月山), 궁궐에서 조경정원, 다리, 누각, 산 이름까지 달을 품고 있다. 모두 신라인들이 세우고 지은 이름들이다. 달과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여유와 풍류가 있었다. 조선의 대학자 성현도 경주에서는 문천(지금의 남천)이 볼만하다고 하였다. 문천 강물은 월성과 월정교를 벗한다.

  오늘의 우리에게 ‘신라의 달밤’노래가 있다. 신라인들이 부르던 신라의 밤 노래는 어떠했을까. 어떤 추임새 어떤 마음으로 달과 어울렸을까. <도솔가>, <제망매가>로 이름이 높은 신라 경덕왕 때의 월명스님은 사천왕사 앞길을 걷다 적당한 곳에 걸터앉아 젓대를 불어, 하늘에 가던 달을 관객으로 멈춰 세워 대금자갈으로 천지인을 소통시켰다. 신라인들의 여유와 달 사랑이 이 정도다. 신라 헌강왕대 처용은 서라벌 밝은 달 아래서 밤드리 노닐었다. 원효는 남천 다리를 달밤에 건너 요석공주를 만나 설총을 있게 했다.

  요즘 경주도 야경이 제법 볼만하다. 갖가지 모양과 빛깔의 전등으로 치장을 했다. 보문관광단지, 동궁과 월지, 첨성대 주변 등등. 전기 조명이 밤을 삼키고 있음을 간과할 채, 그 가운데서도 ‘무식한 경관조명의 대표’로 ‘서출지(書出池)’ 조명이 지적당하곤 한다.

  신라 소지왕의 행차에서 까마귀와 쥐가 나타나 임금께 편지를 전해 왕을 구하여 ‘서출지’라 이름 했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나라에서는 까마귀와 뭇 짐승들을 위해 오곡밥을 하여 담 위에 놓고 베푸니 이름 하여 오기일(烏忌日)이라, 이는 사람과 동물과 천지가 어울려 살아감을 뜻한다고도 하겠다.

  문무대왕릉에서는 오른 태양이 토함산을 오르면 맨 먼저 빛을 비추는 동남산 서출지, 그 소담한 곳. ‘이요당(二樂堂)’ 정자와 연꽃과 갈대와 백일홍과 소나무, 향나무, 산과 연못과 주민과 역사가 어우러진 곳. 이곳에 어느 날 땅을 파고 전선을 묻고 쇠파이프를 세워 나무와 연못과 정자에 조명을 비추었다. 동시에 달은 떠나고 나무와 풀들은 밤에도 시름 앓고 있다.

  또 최근 첨성대를 끼고 동궁과 월지로 가는 길. 신라인과 대화를 하며 달빛샤워를 할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꽃과 잎이 지고나면 별과 달이 열리던 나뭇가지엔 눈조명을 칭칭 감아 메어 밤이면 별도 달빛도 근접 못하게 번쩍거린다. 굳이 조명을 할지라면 달 좋은 날 몇 날만 이라도 첨성대와 월성, 서출지 주변 조명을 모두 꺼서, 달과 별과 밤에 기댄 나무와 풀, 고요와 평화 조화를 이루며 경주를 거니는 우리의 모습을 만날 수 있기를….

 

손수협
경주박물관대학 교수

 

동대신문 press@donggu.ac.kr

<저작권자 © 동대신문 경주캠퍼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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