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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19와 목수의 시간

기사승인 2021.03.18  09: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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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혜진 북한산목공소 대표

공부가 주업인 사람으로 살아왔다. 코비드19가 시작되기 바로 전 2018년 겨울, 취미로 하던 목공을 업으로 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목공이 직업이고 공부가 취미다. 코비드19와 함께 목공소를 열었고, 목수로 살면서 정신없이 나무와 씨름하며 몸을 쓰고 보냈다. 그렇게 두 번의 년도가 바뀌었고, 코비드19가 우리와 함께한 것도 비슷한 기간이 되어간다. 물리적으로 목수로 지낸 기간과 코비드19의 기간이 나에겐 같다. 때문에 목수로 사는 길에서 생기는 어려움인지 코비드19로 인한 삶의 팍팍함인지 그 둘을 구분할 길이 나에겐 별로 없지만, 코비드19의 시간을 목수의 시간으로 바꾼다면, 우리의 시간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목수의 업은 나무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무엇을 만들지보다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가 더 고민이 된다는 말이다. 목적과 결과에 치중하면 결국 과정에서 생기는 이슈를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 문제는 해결해야 할 일이지만, 과정의 변화는 생각을 다시 하게 한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거리를 두고 작업물을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관성에 젖은 일꾼이 자기의 작업을 멈추는 것은 달리는 말을 멈춰 세우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있다면, 그리고 천천히 작업물을 볼 수 있다면,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보인다. 작업물이던 나무가 나에게 자신의 몸을 바꾸며 다른 길을 알려준다. 그 길은 생각하지 못한 길이었으나 아름답다. 때론 바뀐 디자인이 새롭고 참신한 모습이 되기도 하고, 구조물이 더 견고해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목수의 시간이다. 멈추고 기다리고 생각하는 시간.

코비드19로 원하든 원치 않든 일상과 관계의 멈춤을 당했다. 학교와 직장은 갈 수 없고, 대신 집에서 업무보고 수업을 듣는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물리적 거리를 두어야 한다. 자신의 삶과 세상과의 거리를 두는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그토록 인간이 갖고 싶어 했던 그 순간이 어쩌면 우리의 갈망처럼 기적처럼 우리에게 왔다.

선생님들은 농담으로 “학교도 좋은 곳이야, 학생만 없으면”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거라 생각한 그들의 꿈이 실현되었다. 학생과 직장인들은 매일 학교나 직장에 가지 않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꿈도 실현되었다. 밥하기 싫은데 누가 대신 먹을 것을 내 앞에 가져다 주었음 좋겠어. 그들의 꿈도 실현되었다. 우리의 꿈은 이렇게 실현된다. 우리가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하지만 했던 말 그대로. 우리 앞에.

그러니 이제부터는 생각해야 할 때다. 코비드19로 멈춤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멈추는 시간을. 우리가 무엇을 꿈꾸는지가 아니라 그 꿈을 어떻게 꿀 것인지. 기적처럼 이번에는 우리가 원하는 그 시간이 도래할지 모르지 않나. 당하는 멈춤이 아니라 내가 ‘그만’이라 말하고 나를 멈추게 하는 것. 이것은 코비드19를 극복하기 위해 나와 타인을 위한 캠페인성 ‘멈춤’과는 다른 의미이다. 관성으로 하던 몸짓을 스스로 멈출 수 있는 자의적 쉼. 가던 길이니 계속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익숙함에서의 빗겨남. 코비드19에 멈추고 기다리고 생각하는 목수의 시간이 절실히 기대된 이유이다. 나를 내가 멈추게 하는 큰 용기와 결단의 시간. 

동대신문 dgumedia@naver.com

<저작권자 © 동대신문 경주캠퍼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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