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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잊힌 것들의 증상과 투쟁

기사승인 2021.08.24  16: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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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환 문화연구자

  이번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버블방역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한 사람씩 공기방울로 감싸듯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하여 코로나 확산을 막겠다는 것이다. 효과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방역이 절실한 만큼 버블과 같은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올림픽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코로나 시대의 풍경이 그렇다. 코로나는 외형적으로는 생물학적, 의학적 사건이지만 질병 자체보다 그로 인해 생겨난 삶의 구조를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증상이라 하겠다. 정신분석학에서 증상(symptom)이란 지배적인 질서의 산물이면서 주체를 구성하는 원리를 말한다. 주체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증상들을 사회 구조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 코로나가 증상이라는 언명은, 코로나로 인해 생겨난 사건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 혹은 약점을 유추해야 한다는 명제로 이어진다. 이런 유추를 수행해야 하는 일은 비극일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를 통해 알게 된 현실이란 대개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 혹은 숨기려 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사회적 약자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코로나는 균질하지 않다. 약자에게 더 빨리, 그리고 더 강하게 다가온다. 사정이 좋은 대기업보다는 그 밑에서 하청을 받는 중소기업이, 전문직보다는 경쟁에서 밀려나 창업에 뛰어든 자영업자들이 코로나의 타격을 더 심하게 받는다. 언론이나 정부에서 코로나 취약계층이라 말하지만, 사실 이들은 코로나 이전부터 약자의 위치에 있었다. 다만 덜 드러났을 뿐이다. 그래서 코로나는 우리 사회의 약육강식의 증상이다. 누군가가 코로나로 인해 손해를 보았다면 그게 정말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약자였다가 이 혼란한 시기에 드디어 크게 물린 것인지 분석해볼 일이다. 


  이런 분석은 코로나가 사회경제 체제의 변화를 가시화하는 증상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인공지능이니 구독경제 하는 변화의 키워드들을 오래 전부터 들어왔지만 절실하게 체험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언택트’라는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이 맞춰지자 ‘혁명’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런 변화를 두고 단순히 배달이 늘어났다거나 온라인이 활성화되었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경제구조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는 1년이면 충분했다. 플랫폼 노동이 주류가 되었고 그 경쟁의 생존자에게도 이익은 소외된다는 사실 말이다. 흔히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지금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라이더’들을 보면서 그들이 코로나 이전부터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를 일깨운 게 바로 코로나이다.


  코로나 사태가 번진 중요한 지평 중 하나는 대학을 포함한 교육 시스템이다. 작년, 급하게 비대면 수업을 준비하느라 전세계가 곤욕을 치를 즈음, 미래학자 유발 하라리는 교육의 미래는 비대면 형식이 될 것이라 예견한 자신의 발언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좀 야살스럽긴 하지만 맞는 말이다. 넓은 캠퍼스와 강의실이 없어도 대학 수업은 가능했다. 처음에는 임시방편처럼 보였지만, 몇 학기 겪고 나서는 비대면 수업이 대면 수업을 대체할 수 없으리라는 우려는 많이 사라졌다. 비대면 수업은 수업형식의 변화가 아니라 교육 시스템의 전복적 변화의 계기이자 증거이다. 강의실에 모이지 않아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은 교수와 학생의 수직적 관계로 성립된 대학 시스템의 우위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공계 지식 시장에서 대학을 능가하는 시스템은 차고넘친다. 인문학에서도 대학의 비교우위는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코로나 덕분에 예상보다 빨리 알게 된 것뿐이다. 이른바 ‘빨리 온 미래’이다.


  이런 변화가 절대적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엉뚱한 얘기지만 좀비 영화로 마무리하면 어떨까. 좀비가 거리에 출몰하면서 드러나는 것은 좀비의 괴물성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본성이다. 좀비는 잊힌 것을 일깨우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코로나도 그렇다. 필요한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반성, 그리고 앞으로 생존 방식에 대한 전체 삶을 건 투쟁이다. 여기서 이겨야 살아남는다. 코로나는 그러한 투쟁의 화두이다. 사회 전체가 코로나 이후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동대신문 dgumedia@naver.com

<저작권자 © 동대신문 경주캠퍼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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