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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가지 관점에서 바라본
2021년 미얀마 쿠데타의 배경

기사승인 2021.09.07  11: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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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실자본주의, 2008헌법과 친군부 세력

▲ 글로벌경제통상학부 다니엘 교수

동남아시아에서 제2의 베트남으로 주목받던 미얀마는 2021년 2월 1일에 민아웅르하인 (Ming Aung Hlaing) 총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송두리째 무너지고 말았다. 이번 쿠데타는 미얀마가 1962년부터 2010년까지 긴 세월의 군부 체제가 내린 깊고 썩은 정치계의 뿌리를 뽑지 못하고 군부의 정치개입을 보장하는 헌법을 개정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2010년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고 민간정권으로 출범하게 된 군부 소속의 민간정당인 연방단결발전당 (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USDP)이 자유와 경제발전을 갈망하던 미얀마 국민에게 민주주의 도입과 경제발전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었으나 확신까지 주지는 못했다. 이후 2015년에 아웅산 수찌 여사가 이끈 민주주의민족동맹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NLD)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문민정부가 출범하게 되자 온 국민은 환호하였고, 그 희망이 확신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동남아시아에서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던 미얀마가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다.

미얀마는 풍부한 지하자원과 지리적인 이점, 저렴한 노동력으로 주변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한동안 성장했다. 실질적으로 미얀마는 2010년~2018년 사이에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 교역량과 국내자본 축적이 증가하였다. 이는 고용과 1인당 소득의 증가로 이어지면서 연평균 7% 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여 미얀마의 경제성장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가 많았다. 그러나 군부의 입지를 보장하는 헌법에 대한 개정이 없이는 낙관적 견해가 지속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충고가 있었지만 5년 만에 쿠데타에 의해 정권이 빼앗길 것이라고는 전문가들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생각된다.

2020년 11월에 치른 총선에서 NLD 당이 또 다시 압승을 거두자 군의 총사령관인 민아웅르하인은 근거 없는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2021년 2월 1일 새벽에 쿠데타를 일으켰다. 대통령 우윈민 (U Win Myint)과 아웅산수찌 (Daw Aung San Suu Kyi) 국가고문을 비롯해 고위 민주화 세력들을 체포한 다음, 부통령을 통해 1년간 국가비상사태를 공포하고, 입법권, 행정권과 사법권 등 3권 (三權)이 총사령관에게 넘겼다. 사실은 국가비상사태가 대통령이 아닌 부통령이 선언하였기 때문에 2008년 헌법에 위반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었지만 군부는 부정선거나 국가비상사태의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즉, 번 쿠데타의 동기는 군이 NLD정권의 입지 강화와 헌법 개정의 추진 가능성을 예상하면서 군의 정치적 입지가 약화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또한, 총사령관이 퇴임을 앞둔 상황에서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에게 임기 연장 또는 대통령직까지 요구한 것을 보아 총사령관의 개인적인 욕심이 쿠데타에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NLD 정부의 헌법 개정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하는 일부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5년이라는 짧은 임기 기간과 군부의 입지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2008 헌법 체제에서 군.경의 통수권자인 민아웅르하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헌법 개정을 포함한 오래 방치되던 경제.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권력과 자원 및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군은 애초부터 문민정부에게 정권을 이양할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단지   1990년대부터 군사정권이 추진한 정치, 경제와 친군부 세력 확장을 어느 정도 달성하였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2010년에 총선을 치르게 하여 군부의 뜻을 대변할 친군부 민간정당인 연방단결발전당을 통해 정권을 이양해 준 것뿐이었다고 본다.

군부는 대규모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후인 1988년부터 이러한 전략을 펼쳤으며, 미얀마 국민이 또 다시 저항하지 못하도록 정치. 경제, 사회 측면에서 오랫동안 철저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1962년부터 1988년까지 네위 정권이 추진했던 버마식 사회주의 체제 (Burmese Way to Socialism)는 많은 몰수기업들의 운영중단, 농산물 수출량 감소, 국가채무 증가, 통화정책의 실패, 빈곤층 증가, 최빈국으로의 전락 등의 경제 문제를 초래하였다. 결국, 1988년 8월 8일, 생활고에 시달린 국민들은 대규모 민주화 운동을 일으켰으나 군경의 무력 진압으로 최소 3,000여 명에서 최대 10,000명의 국민들이 희생당했다.

군사정권은 미얀마 독립영웅인 아웅산 (General Aung San) 장군의 딸인 아웅산 수찌 여사의 등장과 민주주의민족동맹 (NLD)의 결성에 힘입어 이러한 국민의 반발이 확산되는 것을 통제해야 한다고 인식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군은 민주화 운동 확산을 막고 아웅산 수찌 여사와 NLD 당을 견제하면서 군의 입지를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을 택했다. 즉, 서마응장군 (Saw Maung)이 네위정권의 버마사회주의계획당 (Burma Socialist Programme Party-BSPP)을 국가법질서회복평의회 (State and Law Order Restoration Council-SLORC)로 대체하고, 1990년에 다당제 총선(Multi-party Election)을 치르기로 약속한 후 1989년에 아웅산 수찌 여사를 가택연금 시켰으며, 총선의 결과까지 무효화 하였다.  서마응 장군이 국가법질서회복평의회의 의장을 맡게 되었으나 1992년에 건강의 이유로 의장직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네위의 강경파 출신 중 SLORC의 부의장이었던 딴쉐 (Than Shwe)가 의장직을 맡게 되었다. 그는 정치에서 군의 입지가 강화되고 헌법에서 군부의 개입이 보장된다면 친군부 민간정당을 통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민간정당이 실질적으로 국민의 지지와 투표를 얻고 아웅산 수찌 여사와 NLD 당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친군부 세력의 확장도 필요했다. 따라서 그는 아웅산 수찌 여사의 가택연금과 총선 결과에 대한 무효화로 분노한 국민을 상대로 3가지의 전략을 펼치게 된다.

첫째는 개방화와 민영화를 통한 정실 자본주의 (Crony Capitalism) 문화의 정착이다. 폐쇄경제정책의 실패로 빈곤에 시달린 국민에게 경제성장의 희망을 심어주고,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1990년대 초반부터 SLORC는 외국인 직접투자법 (1988), 회사법(1990), 국영기업법(1989)과 민간투자법(1990) 등 개방화와 민영화와 관련된 일련의 법률들을 제정하고, 네위정권에 의해 몰수된 기업들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수출 지향적인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민은 민영화와 개방화 정책의 혜택이 주로 군부와 소수 친군부 세력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SLORC는 1990년대 초반에 미얀마경제지주회사 (MEHL)와 미얀마경제공사 (MEC)를 설립하였고, 최소 106개 이상의 계열사를 통해 루비와 옥 등 광업 채굴과 유통을 비롯해 철강, 시멘트와 고무 등 군수사업에 필요한 공업용 원재료 제조업, 운송업, 식품업, 은행업, 호텔업과 무역업 등 다양한 사업활동을 운영하면서 막대한 외화수입을 창출하고 군사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또한, MEHL나 MEC와 합작형식으로 외국인 직접투자를 운영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하였다. 또한, 미국과 EU 등의 경제 제재를 피해 중국과 주변국과의 교역을 통해 수출시장을 확보하는 한편 주변국과 동아시아 국가와의 투자협력을 통해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강화했다. 민영화의 경우, 일반기업이 아닌 친군부 민간기업들을 통해 추진한 결과, 해당 민간기업들이 군부와의 관계를 이용하여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고 오늘날의 Htoo 그룹과 Kanbawza 그룹 등 재벌기업으로 성장하게 되면서 군사정권과 재벌기업 그리고 외국기업 간의 유착관계에 의해 정실자본주의 문화가 뿌리 깊게 박힌 것이다.

둘째, 딴쉐장군은 1997년에 기존의 SLORC를 폐지하고, 국가평화발전평의회 (State Peace and Development Council-SPDC)로 재구성한 후 2003년에 민주주의로 가는 길 (Road to Democracy) 7단계의 정책을 발표하면서 국민에게 개방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 민주주의 로드맵은 군사의 정치개입을 합법화하는 헌법을 제정하기 위한 국민투표 (Constitutional referendum)를 진행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SPDC는 계획에 따라 2008년5월 10일에 국민투표를 진행하였다. 군부가 국회의 25% 의석을 선거 없이 차지하도록 하는 조항, 군경에 대한 절대 통수권을 보장하는 조항, 개헌을 위해 국회 의석 중 75%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는 조항과 국가비상사태 공포에 관한 조항을 포함하는 헌법을 국민투표를 통해 성공적으로 제정하였으나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국민투표를 진행하기 며칠 전인 2008년 5월 2일에 사이클론 나르기스 (Cyclone Nargis)가 에야와디 (Ayeyarwady) 삼각주 지역을 강타하여 약 13만명의 희생자와 약 2백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국민투표를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서 재난구호요원들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구호용품 전달을 방해하는 등 국제사회의 압력을 최소화하려고 한 것을 보면 2008년 헌법이 군사정권에 주는 의미가 매우 크다. 따라서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과 NLD 정부가 추진하는 개헌이 얼마나 군사정권에게 위협하는 행위인지를 알 수 있고, NLD 정부의 개헌 노력이 국회에서 빈번히 실패한 것도 납득할 수 있다.

셋째, 군부의 뜻을 대변하는 민간정당을 육성하고, 국회에 입성할 고학력 군의원을 육성하기 위해서 군사훈련 외에 컴퓨터과학, 물리학, 화학 등 자연과학, 인문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학부과정이 개설된 군사관학교 (Defense Service Army-DSA)를 확대하여 운영하기 시작했다. 또한, 군사관학교 출신들이 군 복무 이외에 군이 소유하고 있는 기업체를 비롯해 정치계까지 폭넓게 진출할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에 수능 합격한 많은 청년 남성들이 일반 대학 대신 DSA에 입대하게 되면서 친군부 세력이 사회의 모든 계층으로 확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군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는 연방단결발전당 (USDP)은 NLD 정권을 견제하는 한편 국회에서는 군부의 입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며, 2020년 총선이 부정선거라는 억지 주장으로 사태를 동요시킨 세력도 USDP였다.  올해 7개월째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운동인 봄 혁명의 참가자들은 군경의 무력 진압과 더불어 USDP를 포함한 친군부 세력이 구성한 퓨서티 (Pyu Saw Htee) 단체에 의해 희생되고 있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 (Assistance Association for Political Prisoners-AAPP)는 9월 1일부로 군사위와 친군부 세력에 의해 희생된 시민은 총 1,040명에 달한다고 집계하였다.

이제 국민통합정부 (NUG)의 주도로 소수민족무장단체들과 연대하여 창설된 시민방위군 (PDF)의 반격도 거세지고 있으며, 군사위의 피해는 나날이 급증하고 있다. 이는 국민통합정부(NUG)의 주도로 소수민족무장단체들과 시민방위군, 시민불복종운동가, 국내외 금전적 지원자와 단체들, 시민단체와 봉사단체 등 다양한 단위의 모든 민주투사들이 뜻을 모아 7개월 동안 군사위에 저항하고 반격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혁명의 특징은 1995년 ~ 2010년 사이에 태어난 Z 세대 청년들이 시민 불복종운동과 거리시위부터 시민방위군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한 점이다. Z 세대는 두 번의 투표 경험이 있는 세대인 만큼 군부가 부당하게 자유와 인권을 침탈한 것에 분개했을 것이다. 또한, 다른 세대보다 변화에 유연하고,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능통하여 이번 봄 혁명에 필요한 다양한 민주화 운동의 온라인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고, 사람과 금전 등 제한적 자원들의 효율적 배분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더욱이, 봄 혁명의 선두에 있는 만큼 위험에 노출되어 희생이 커지고 있다.

Y 세대는 1980년~1994년 사이에 태어난 장년층이며, 국내외에서 경제활동이 가장 왕성한 세대로 봄 혁명에 필요한 금전적 지원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세대 중에는 해외대학의 고학력 졸업자나 산업체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많아 국민통합정부 (National Unity Government-NUG)의 입지 강화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1960년~1979년 사이에 태어난 X 세대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군사정권 체제에서 보낸 세대이다. 이 세대는 군사위의 쿠데타, 독재와 시민통제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봄 혁명과 국민통합정부 설립에 필요한 제도적인 지원을 조속히 마련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세대라고 보면 된다.

종합적으로 보면, 군사위는 애초부터 정권을 이양할 생각이 없었고, 쿠데타로 뺏은 정권을 쉽게 놓아줄 리가 없다. 이에 국민통합정부도 군부의 전략과 같이 군사력, 자금과 세력을 확장하여 힘을 키울 필요가 있다. 첫째 소수민족무장단체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연합군의 규모를 강화하는 동시에 군사위의 응집력과 병력을 약화시키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둘째, 국민통합정부는 남녀노소 민족과 지역 관계없이 모든 시민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집단 응집력을 강화하는 한편 다양한 계층과 세대들 간의 소통과 협력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최소화해야 한다. 셋째, 미얀마의 공식정부로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고,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연방헌법 (Federal Union Constitution) 등 필요한 법률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넷째, 국민통합정부는 연합군의 군사력을 강화하고, 시민불복종운동의 참여자를 지원하기 위해서 대규모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사업을 구축하거나 해외에서 동결된 군부의 자산을 확보하는 동시에 군사위의 기업과 재벌기업들 또는 외국기업들 간의 유착관계를 철저히 규명하여 압박해야 한다.

동대신문 dgu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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