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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기사승인 2022.01.27  15: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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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면으로 보는 숨겨진 경주

항마촉지인 수인을 한 아미타불

석굴암 본존만큼 뛰어난 조각의 불상

▲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2000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경주역사유적지구 중 남산지구는 마흔 곳이 넘는 골짜기에 왕릉 13기, 산성터 4개소, 절터 150개소, 불상 129체, 탑 99기, 석등 22기, 연화대 19점 등 694점(출처=경주남산연구소)의 문화유적이 남아 있어 노천박물관이라 불리고 있다.

이 중 경북산림환경연구소 가기 전 갯마을로 들어가 미륵곡을 오르면 보리사가 있고 여기에 석굴암 본존불과 비교해도 될 만큼 조각 솜씨가 뛰어난 석불이 있으니 보물로 지정된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이다.

지금은 노천에 드러나 있는 이 불상은 그래도 허름한 절집이 오래전부터 이어진 탓(?)인지 대좌와 화려한 광배는 물론 불상의 오뚝한 코가 그대로 잘 남아 있는 보기 드문 불상으로 많은 이들이 남산에서 조각 수법이 가장 화려하고 잘생긴 불상으로 꼽고 있다.

원래는 법당에 봉안되어 있었을 것이나 무슨 이유인지 법당이 없어진 채 오랜 기간을 노천에서 보낸 탓인지 광배와 대좌 일부가 깨져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깨진 광배는 보수를 통해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다.

불상의 얼굴만큼 화려한 광배는 굵은 철선(凸線)으로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고 이 선을 따라 12잎의 꽃무늬를 새겼다. 두광과 신광의 안쪽에는 보상화문·당초문을 화려하게 새겼고, 두광에는 3구의 화불, 신광에는 4구의 화불을 배치하였으며, 바깥쪽으로는 불꽃무늬가 유려하게 새겨져 있다.

그러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좁아진 듯한 어깨에 가슴은 건장한 편이지만 평평하게 처리되어 석굴암 본존불에서 느껴지는 탄력과 긴장감은 많이 줄어들어 있다. 이러한 점은 다소 작게 표현된 항마촉지인의 손이라든가 폭이 좁아지고 높이가 낮아져 빈약해 보이는 하체에서도 공통되는 것이다’라고 평가하며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 옛 사진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따라서 이 불상은 최고의 정점을 찍은 석굴암 본존이 조각된 8C 중반 이후 조성된 불상으로 보고 있다.

불상의 구분은 손 모양인 수인으로 하는데 석가모니불의 대표적인 수인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을 당시의 모습으로 땅을 짚으며 마귀를 물리치라 명하는 ‘촉지항마인’ 혹은 ‘항마촉지인’인데 이 불상도 같은 수인을 하고 있어 석가모니불로 볼 수 있으나 아미타불로 보는 견해가 더 많다.

통일신라 이후 불상의 수인이 혼돈되기 시작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국보 영주 부석사소조여래좌상으로 항마촉지인의 이 불상은 법당의 정면에 위치하지 않고 왼쪽에서 오른쪽을 향해 있는데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계시는 아미타불이라는 표현이라 이 법당도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신 대웅전이 아니라 아미타불을 모신 무량수전 현판이 붙어 있다.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또한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고 특히 광배 뒷면에 동방유리광세계를 관장하는 약사불이 선 새김으로 조각되어 있어 이 불상이 아미타불임을 증명하고 있다.

경주 남산은 며칠을 보아도 다 볼 수 없을 만큼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으니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동남산 가는 길‘을 필두로 ▲삼릉 가는 길 ▲남산답사 1번지 삼릉골 ▲용장골 등으로 나눠 답사하기를 추천한다.

문화유산해설사

신라마을 대표

이 진 호

▲ 무량수전 내 부석사소조여래좌상(사진=문화재청).
▲ 뒷면 선각약사여래좌상.

 

 

 

 

 

 

 

 

동대신문 dgumedia@naver.com

<저작권자 © 동대신문 경주캠퍼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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