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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 결과의 일제강점기 건물

기사승인 2022.04.21  09: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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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기행 길라잡이

경주 최초 일제강점기 신식의원 야마구찌(山口)병원

문화재 밀매꾼 일본인이 세운 일본식 사찰 서경사

1995년 석굴암·불국사, 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 2010년 한국의 역사마을 - 양동, 2019년 한국의 서원 – 옥산서원 등 네 가지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경주는 신라시대 두 가지, 조선시대 두 가지의 세계유산을 골고루 보유했으나 신라 천년의 고도라는 수식어로 더 알려져 있다.

경주 석빙고의 경우 조선시대 유적임에도 불구 당연히 신라시대 유적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 정도로 신라라는 그늘에 가려진 조선시대 유적이 많은데 이 중에는 감동과 아픔이 있는 뒷얘기를 가진 유적도 많다.

현재 70채가 넘는 일제강점기 건물이 경주에 남아 있는데 그중 최초의 신식 의원인 야마구찌(山口, 산구)병원(현, 화랑수련원)은 신라인의 미소로 알려진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보물)를 돌려줘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반면 문화재 밀매꾼 일본인이 개인의 안녕을 위해 세운 일본식 사찰 서경사(현, 판소리 전수관)는 나라 뺏긴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상반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화랑수련관(경주경찰서 의경 체력단련실)으로 사용중인 구, 산구병원.

 

산구병원 일본인 의사가 골동품점에서 구입한 얼굴무늬 수막새

일본인 야마구찌 키즈미가 세운 산구병원은 강점자 측의 언론에서 취급한 기사인 것을 참고하여야 하겠지만 ‘무료 시약, 경주소학교 증축 후원, 보통학교 입학생 전원에게 1인당 10전의 저금첩 지급, 걸인에게는 완치될 때까지 무료로 치료, 조선 사람들을 양성하여 공부시켜준다.’등의 신문 기사가 실릴 정도로 사회공헌에 앞장섰던 곳이다.

▲ 보물로 지정된 얼굴무늬 수막새와 일제강점기 잡지 ‘조선’에 소개된 모습.

 여기서 근무하던 다나카 도시노부라는 28세의 젊은 의사가 1934년 일본인 골동품상으로부터 흥륜사터에서 출토됐다는 기와를 고가에 구입했고 이것이 “조선” 229호에 ‘신라의 가면와’로 소개됐다. 이후 흥륜사지는 발굴을 통해 ‘영묘지사’라 새겨진 기와 등이 출토돼 지금은 영묘사터를 출토지로 기록하고 있다.

1940년 전후 일본으로 옮겨지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 듯했던 와당은 박일훈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이 이 와당의 소재에 관심을 갖고 추적을 시작, 1972년 일본 출장길에 다나카씨를 만나 한국에 기증해 줄 것을 요청, 1972년 10월 14일 다나카씨 부부는 경주를 방문해서 직접 쓴 기증서와 함께 기증해 지금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에서 우리를 맞고 있다.

 

문화재 밀매업으로 모은 재산으로 일본인이 세운 일본식 사찰 서경사

▲ 현재 판소리 전수관으로 사용 중인 일본식 사찰 구, 서경사.

1908년 대서업으로 경주에 정착한 모로가 히데오는 1920년대부터 30년대 초반까지 ‘경주왕’으로 불릴 만큼 권세를 부린 권력자로 사이토 마코토 총독과 갚은 관계를 맺고 1926년 경주고적보존회 진열관이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승격되자 관장 격인 주임으로 취임했고 사적 발굴(?)과 도굴꾼을 통해 문화재를 수집했다.

경주분관 근처인 지금의 동산병원 자리에서 여관업과 골동품업을 하던 시바타 단쿠로는 1917년 시바타 여관이 조선 총독의 경주방문 숙소로 선정된 이후 권력가들의 전용 숙소로 이용되며 권력가들의 안내를 전담했던 경주박물관장 모로가 히데오와 일신동체의 관계를 맺게 된다.

1927년 시바타의 회갑연이 3일 동안 열렸다는 기사가 일본어 지방신문 부산일보에 두 번 실릴 정도로 재력을 쌓은 시바타는 1932년 개인의 재력으로 일본에서 자재를 들여와 일본식 사찰 서경사를 짓는데 이 모든 재산이 여관업이 아닌 모로가와의 골동품 밀거래에 기인함을 보여 준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1933년 모로가가 경주박물관 관장인 동시에 경상북도 평의원의 요직을 이용, 경주 부근 고물(문화재)을 비밀리에 사들여 일본의 어느 골동품상과 연락하여 사리를 취해 검거됐는데 당시 가택을 수색한 결과 2만 여원 어치의 고물을 압수했다는 기사가 동아일보에 실렸다.

▲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 관장 격인 모로가 히데오와 동아일보 기사.

그러나 집행유예와 몇백 원의 벌금형을 받은 모로가는 1936년 경북수산회 주임으로 임명되어 포항으로 부임하기까지 3년여 동안 경주에서 호의호식했으며 시바타의 여관에서 성대한 송별식을 열고 전세 자동차로 경주를 떠났다는 기사도 부산일보에 실렸다.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해체를 전후 구, 서경사 건물해체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아픔의 역사도 교훈으로 기억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2006년 12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판소리 전수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진 호

문화유산해설사 / 신라마을 대표

 

동대신문 dgumedia@naver.com

<저작권자 © 동대신문 경주캠퍼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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