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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최완 선생 생가

기사승인 2022.05.04  12: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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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기행 길라잡이

상해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 등 역임

마지막 경주최부자 최준 선생 둘째 동생

▲ 독립유공자 분포도(사진=독립기념관)

경북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지역으로 타 시도에 비해 독립유공자의 수가 월등히 많은 지역이다. 특히 안동 오미마을은 마을 전체가 독립유공자 집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경주에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형제가 나란히 독립유공자로 올라 있는 집안이 있다.

바로 한국의 대표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꼽히는 경주 최부잣집이다. 12대 동안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한 최부잣집은 마지막 최부자인 최준(1884~1970) 선생과 그의 둘째 동생인 최완(1889~1927) 선생이 나란히 독립유공자로 올라 있다.

임진왜란 당시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으며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69세의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인조를 구하기 위해 병사들을 이끌고 진격하다 험천전투에서 전사, 공신에 오른 것은 물론 청백리에도 녹선된 잠와 최진립 선생으로부터 시작된 경주최부자의 명맥은 경주지역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11대 경주최부자 둔차 최현식 선생으로 이어졌다.

▲ 11대 최부자 최현식 선생.

최현식 선생은 1910년 일제의 강제 병합에 항거 모든 재산과 권한을 마지막 최부자로 알려진 아들 최준에게 물려주고 집안에 칩거하며 매일 상복을 입고 곡을 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러면서 경주지역 국채보상운동 취지문, 광고문은 물론 국채보상운동 전개를 위해 주고받은 편지, 참가한 군민 5천여 명의 명단과 금액 등 일련의 과정을 소상히 수집해 보관했는데 이 서류를 포함한 다량의 문서가 지난 2018년 최부자 고택 안채 창고에서 발견돼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최현식 선생은 슬하에 4형제를 두었는데 첫째 아들로 백산 안희제 선생과 함께 백산무역을 통해 상해임시정부로 독립자금을 조달한 마지막(12대) 최부자 최준 선생은 독립유공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셋째 아들인 최완 선생은 독립유공자로 혁혁한 공로가 있음에도 이를 아는 이가 별로 없다.

▲ 2018년 발견된 문서들과 함께 나온 명함과 근하신년 엽서. 왼쪽부터 자신을 백성이라 소개하는 최현식 선생과 아들인 최준, 최완, 최순 선생의 명함과 백산무역의 근하신년 엽서. (사진출처=경주최부자 민족정신선양회)

 동학의 지도자인 해월 최시형 선생의 아들인 최동희와 함께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일찍이 신학문을 접한 최완 선생은 1909년 안희제 등과 함께 대동청년단을 조직해 국권 회복에 뜻을 두고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형을 도와 백산무역의 주주로 2년간 활동하다 거금을 들고 상해로 망명해 상해임시정부 재무부 위원,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한다.

일제 경주 경찰서장은 최준 선생에게 붓글씨를 배운다는 핑계로 3년여 동안 매일같이 최부잣집을 방문해 직접 형제들의 동태를 감시하다 어느 정도 최준 선생의 글씨체를 흉내 내게 되자 아버님이 위독하니 빨리 귀국하라는 가짜 편지를 상해로 보내 최완 선생을 귀국하도록 공작을 펼쳤다.

형의 글씨체로 오인한 최완 선생은 귀국하자마자 바로 일경에 의해 체포돼 대구형무소에 수감 되었다가 1927년 석방되었으나 석방 사흘 만에 혹독한 고문과 오랜 망명 생활에서 얻은 지병으로 38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했다.

▲ 대한민국 3년(1921년) 1월 1일 임시정부 및 임시의정원 신년축하식 기념촬영. 최완 선생의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사진=독립기념관)

4형제 중 막내 최순 선생도 백산무역의 상무를 역임하며 백방으로 형을 도왔으며 광복 후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하다 이를 못마땅히 여긴 일제 경찰 출신의 사주에 의해 암살당했는데 독립유공자에는 아직 오르지 못했으나 형제 3명이 독립유공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이들의 사촌 매형이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이니 과연 독립유공자 집안이라 할 것이다.

월정교가 있는 경주 교촌마을 경주최부자 고택 대문을 정문으로 바라보면 왼쪽에 교동법주가 보이는데 이 집이 경주최부자가 내남에서 교촌마을로 이사와 처음 지은 집인데 이후 크게 지은 집이 지급의 최부자 고택이며 교동법주와 붙어있는 왼쪽 집이 독립유공자 최완 선생이 분가해 살았던 집이다.

▲ 최완 선생 생가 전경과 대문 앞 안내판 본문.
▲ 경주 교촌마을 전경. ( ) 속 명칭은 경주최부자 집안에서 부르는 택호.

지금은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어 교촌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잠시 쉬며 차 한잔하며 최완 선생을 기억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이 진 호

문화유산해설사 / 신라마을 대표

 

동대신문 dgumedia@naver.com

<저작권자 © 동대신문 경주캠퍼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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