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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경주 석빙고

기사승인 2022.05.19  14: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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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기행 길라잡이

대부분 목빙고라 경주 등 일부 지역 석빙고만 남아

역병이 도지지 않도록 의료용으로 지방마다 얼음 보관

▲ 경주 월성에 있는 석빙고(보물).

오래전 영화 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년)’라는 영화가 있었다. 한양 서빙고에서 얼음을 훔치는 이야기인데 그만큼 당시 얼음은 금보다 귀한 가치를 지녔고 쉽게 구할 수 없었음을 말해주는 영화이며 예로부터 얼음을 보관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3대 유리왕(재위 24년~57년) 때 이미 얼음창고[氷庫]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지증왕 6년(505년) 겨울철 11월 유사에게 명해 얼음을 보관해 사용하라는 기사가 있어 삼국시대에도 빙고(氷庫)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있다. 영화에도 나오듯이 우리는 얼음창고 하면 돌로 된 석(石)빙고를 떠 올리나 대부분의 빙고는 제작상의 어려움으로 나무로 만든 목(木)빙고가 대부분이었다.

▲ 백성들의 청원으로 목빙고를 석빙고로 고쳤다는 경주 석빙고 옆 비석(왼쪽)과 신유년(1741년 영조 17) 가을 8월에 이곳으로 옮겨 지었다는 석빙고 입구 머릿돌 기록(오른쪽).

 왕실의 빙고인 동빙고와 서빙고 역시 목빙고였는데 매년 얼음을 저장할 때마다 빙고의 천장을 수리하고 썩은 대들보와 서까래를 바꾸고 허물어진 담장을 수리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얼음이 빨리 녹는 비효율성, 빙고를 보수할 때 드는 비용과 노동력을 경기지방에서 부담해야 하는 민폐 때문에 세종 2년(1420년) 동·서 양 빙고를 석빙고로 개조했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경주 석빙고도 처음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조선 영조 14년(1738년) 당시 백성들의 청원으로 나무로 된 빙고를 돌로 축조했다는 내용이 석빙고 옆 비석에 기록되어 있으며 영조 17년(1742년)인 신유년 가을 8월에 서쪽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는 내용이 석빙고 입구 머릿돌에 새겨져 있다.

▲ 좌우 사진은 경주 석빙고 내부와 환기구. 가운데는 현풍 석빙고 환기구 내부 모습(사진=문화재청)

한 대학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석빙고에 보관된 얼음의 손실률이 6개월간 0.4%에 불과할 정도로 보존 성능이 뛰어났다고 하는데 이는 석빙고의 과학적 구조를 잘 보여준다.

경주 석빙고는 차가운 온도를 차갑게 유지하는데 적합한 반지하 구조로 안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바닥 면과 안쪽 배수구는 녹아내린 물이 바닥에 고이지 않고 바로 빠져나가도록 만들었으며 여름으로 갈수록 더워진 공기가 내부에 머물지 않고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천정에 환기구를 3개 만들었다.

왕이 있는 한양에는 왕실 제사 등에 사용할 얼음을 보관하는 ‘동빙고’, 고급 관리들에게 지급할 얼음을 보관하는 ‘서빙고’, 왕실에서 사용할 얼음을 궁궐 내부에서 보관하던 ‘내빙고’가 있었는데 그러면 지방에 있던 빙고의 얼음은 어디에 사용했을까?

지방 빙고의 얼음은 거리상의 이유로 한양의 왕실에서 사용할 수 없었으며 당상관 이상의 고급 관리가 아닌 이상 공식적으로 얼음을 하사받을 수 없는 지방관리는 그 얼음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 경주 석빙고 입구(왼쪽)와 내부구조(오른쪽 도면캡쳐=문화재청)

각 지방의 얼음들은 그 지방의 백성들을 위해 사용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사용처는 의료용이다. 지금의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열이 있는 환자에게 즉시 얼음을 지급해 열을 식히고 역병이 돌지 않도록 하는 목적인데 한양의 서빙고의 얼음은 백성들을 치료하는 혜민서와 감옥인 전옥서에까지 얼음을 지급했다.

또 다른 목적으로는 장례용과 왕실 진상품 보관장소로의 사용이다. 충과 효를 근본으로 삼은 조선은 여름철 돌아가신 분의 장례를 잘 치르기 위해 얼음을 사용했으며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빙어를 진상하기 위해 보관장소로 만들어진 안동 석빙고와 같이 전복 등 신선도가 중요한 진상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이렇듯 귀하디귀한 얼음을 보관하던 빙고는 대부분이 목빙고였던 관계로 대부분 남아있지 않으며 돌로 만든 안동, 현풍, 창녕, 청도 등에만 남아있는데 그 중 경주 석빙고가 가장 온전한 상태이며 현재 동궁과 월지 찻길 건너편 월성 위에 있다.

이 진 호

문화유산해설사 / 신라마을 대표

동대신문 dgumedia@naver.com

<저작권자 © 동대신문 경주캠퍼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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