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기행 길라잡이
바위 4면에 불상을 조각한 사방불 사상
북면 목탑 - 황룡사 9층 목탑 원형 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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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경주남산탑곡마애불상군 전경. 경주남산에서 단일 유적지 중 볼거리가 가장 많은 곳으로 관광객은 잘 모르는 숨은 명소이다. |
세계유산 경주남산의 대표적인 곳으로는 유적·유물이 가장 많이 분포해 경주남산 답사 1번지라 불리는 삼릉골, 산 정상 부근 바위 위에 탑과 불상이 세워진 용장사지, 일출이 유명한 신선암 마애보살상 등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단일 유적 중 가장 많은 볼거리와 중요한 조각을 품고 있는 곳은 서남산의 옥룡암 위에 있는 경주남산탑곡마애불상군으로 커다란 바위 4면에 걸쳐 다양한 조각과 석불입상, 석탑 등이 있는 절터이다.
경주남산탑곡마애불상군이라는 이름만 보면 다른 문화재의 이름과 같이 다분히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한자로 되어 있기에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질 뿐 우리말로 풀어보면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경주남산의 40여 골짜기 중 탑 골짜기 즉, 탑곡(塔谷)에 있어 경주남산 탑곡이라는 지명이 가장 먼저 붙었으며 절벽 면이나 바위 면에 새겨진 조각을 갈 마, 벼랑 애 자를 써 ‘마애(摩崖)’라 하며 불상, 보살상, 비천상, 목탑, 사자상 등 다양한 불교의 조각들이 모여 있기에 불교의 상이 모여[군 群] 있다고 해 불상군(佛像群)이라 부른다.
불교에서는 동서남북 사방을 관장하는 부처님이 따로 있어 이를 사방불 사상이라 하는데 전국에 사방불이 새겨진 조각이 많으나 가장 규모가 크고 조각도 많으며 가장 오래된 곳이 경주남산탑곡마애불상군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신인사(神印寺)’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에 이어 발발한 나당전쟁 당시 명랑법사가 당나라 군사를 물리치기 위해 문두루비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문두루는 범어 무드라(mudra)의 음사로 신인으로 번역되기에 신인사는 신라 삼국통일 전후인 7C 중반 유행했던 사찰로 이곳의 조각 역시 그때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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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북면 전경. (오른쪽) 북면 가운데 연꽃 위에 앉아 계시는 부처님과 머리 위로 장식된 천개. |
북면에는 9층 목탑과 7층 목탑 사이에 연꽃 위에 앉아 계시는 부처님과 천개(天蓋), 그 위로 비천상, 각각의 탑 아래 불법을 수호하는 사자상이 조각돼 있다.
천개는 본래 빛이나 비를 차단하는 양산이나 우산에서 출발, 귀인의 상징으로 머리 위에 펴던 것이 인도 초기 불교미술에서 상징적인 불타를 표현한 스투파·보리수·법륜 등의 위에 만들어졌다.
법당의 불단 위 천장을 보면 화려한 기와집이 장식돼 있고 이를 닷집이라 부르는데 닷집 또한 천개의 일종이며 궁궐의 용상 위에도 닷집이 장식돼 있는데 천개를 장식한다는 것은 법당이라는 표현으로 이곳은 별도의 금동불이나 석불 등을 모신 것이 아니라 바위 면의 불상을 본존으로 법당을 꾸민 것으로 보이는데 남면이 법당이 있던 곳이다.
여기에서 가장 특이한 조각이 목탑인데 국내 불교조각 중 목탑을 새긴 예는 이곳이 유일하다고 여겨지고 있는데 왼쪽이 9층, 오른쪽이 7층으로 특히 왼쪽 9층 목탑은 원형을 알 수 없는 황룡사 9층 목탑의 원형을 연구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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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황룡사 9층 목탑의 원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인 9층 마애 탑. (오른쪽 위) 9층 목탑 아래 입을 열고 있는 암사자. (오른쪽 아래) 7층 목탑 아래 입을 다문 수사자. |
각각의 탑 아래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사자상이 조각돼 있는데 갈기가 없는 왼쪽은 음을 상징하는 암사자, 갈기가 있는 오른쪽은 양을 상징하는 수사자로 음을 상징하는 암사자는 입을 열어 ‘아’라 외치며 양을 표현하고 양을 상징하는 수사자는 입을 다물어 ‘흠’이라 소리 내며 음을 표현하고 있다.
‘아’와 ‘흠’은 산스크리트어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로 처음부터 끝까지, 음과 양 모든 곳에 불법이 미친다는 뜻으로 석굴암의 인왕상 또한 주먹을 쥔 쪽은 일을 열고 손을 편 쪽은 입을 닫아 음과 양, 양과 음을 똑같이 표현하고 있다.
(다음 회 계속)
이 진 호
문화유산해설사 / 신라마을 대표
동대신문 dgumedi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