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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양융합팀 외국어교육부 박종덕 부교수 |
2019년 12월에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몇 개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종식될 것이라던 우리의 장밋빛 예측을 완벽하게 깨트렸고, 팬데믹 즉, 전 세계적인 대유행으로 번지면서 우리의 일상을 잠식했다. 코로나의 예상치 못한 장기화는 우리에게 변화를 강요했고 우리의 일상은 이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사회, 문화, 경제,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의 전무후무한 급속한 변화를 촉발했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우리의 일상이 다시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될 수 있다는 전제는 이제 우리에게 아무런 울림을 주지 못할 만큼 우리의 일상은 너무 많이 변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급작스럽게 단절되고, 사회적 활동들이 멈추면서 우리는 코로나 블루(우울감), 레드(분노감), 블랙(암울함)이라는 정서적 황폐함을 경험하면서 인간관계의 회복을 원했지만, 최소한의 인간관계와 불편한 소통에 더 익숙해진 달라진 오늘의 우리를 보고 있다. 줌으로 간단하게 대체될 수 있는 정례적 회의를 위해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비용과 시간까지 낭비하는 불편함을 굳이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소하게 보이지만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스킨십을 통해 형성되는 인간관계의 역학을 경험한 세대와 간결하고 편리한 소통을 추구하는 세대 간의 갈등은 회사나 학교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3년 넘게 마스크를 장기간 착용하면서 얼굴 표정을 읽어내는 의사소통 기능도 약화되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대와 아이컨택을 하면서 웃어주거나 공감해주던 표정을 잃어갔다. 영유아들은 부모를 제외한 타인의 민얼굴을 본 적이 없기에 표정을 읽어내는 능력이 저하되었고, 3년 만에 대면 강의실로 돌아온 대학생들은 출석을 부를 때 교수자와 눈을 마주치는 것보다 앞에 놓인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는 것이 편하게 되었다. 타인과 섞이고 깎이는 사회화를 통해 자신을 객관화해야 하는 시기를 놓친 학생들은 MBTI와 같은 안면 타당도가 높은 심리 검사 도구 즉,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선택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검사의 신뢰도가 낮고, 검사를 할 때마다 결과값이 달라지는 다소 부정확한 도구를 통해 자신을 규정 받고 싶어하고, 자신이 어느 집단에 소속되면 이상적인지, 어떤 유형과 케미가 잘 맞는지, 심지어 어떤 유형의 이성과 궁합이 잘 맞는지 등과 같은 자기 정체성 찾기를 온라인에서 시도하고 있다.
위에서 약술한 우리의 정서적 변화와 인간관계의 변화는 사회경제적 변화와 기술적 변화에 비하면 정말 미미한 수준이다. 코로나로 인해 집단이 아닌 철저한 개인적 사회문화적 소비패턴으로 바뀌면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한 유튜브는 기존의 대중 매체(IPTV, 케이블 TV 등)를 레거시(legacy) 미디어 혹은 올드(old) 미디어로 전락시켰고, 넷플릭스와 같은 OTT 플랫폼의 약진은 극장의 존립과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 배달 플랫폼을 통해 음식을 배달하는 수요의 폭증으로 인해 식당에서 일을 하던 많은 노동자들이 배달 플랫폼 노동자로 이동하면서 직원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고, 나홀로 사장님이 급증하고 있다. 이제 카페, 패스트푸드 음식점, 생활용품점 등 거의 모든 업종에서 키오스크가 노동력을 대체하고 있고, 전화주문보다는 앱을 통한 주문이 더 많아지고 있다. 처음에는 뒷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급하게 주문을 마무리해야만 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점원들과의 불편한 소통보다는 키오스크라는 편리한 단절을 더 선호하기까지 한다.
메타버스라는 신조어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게 되었고, 심지어 페이스북은 메타버스라는 미래 세상을 선점하기 위해 HMD(Head Mounted Display) 전문회사인 오큘러스를 인수하면서 가상 현실 혹은 증강 현실 분야에 회사의 명운을 걸면서 회사명까지 메타로 바꾸었다. 전기차의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 되었고, 현대는 로봇 회사인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하여 자율주행차뿐만 아니라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를 비롯한 미래 모빌리티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국토교통부는 2020년 11월에 서울 한강과 대구 수성못과 같은 거점 도심 상공에 드론 택시를 띄우면서, 2025년 상용화 목표를 천명했다. 몇 년 후 우리는 현실 속에서 날아다니는 택시를 마주할 것이고, 무인 드론을 통한 택배 배달 등을 일상으로 여길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과 코인 광풍은 이미 많은 논란과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던져 주었다. 이에 발맞추어 역대급 흑자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점포수와 점원수를 계속 줄이고 있고, 심지어 은행을 1층에서 2층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코로나로 촉발된 강요된 변화는 우리의 사회, 문화, 경제, 교육 등 전방위에 걸친 변화와 진화를 가져왔다. 위에서 약술한 변화들만을 고려하더라도 3년간의 변화가 아니라 30년 혹은 한 세대가 경험하기에도 벅찰 만큼의 변화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우리가 막연하지만 숨죽이면서 이러한 변화들을 감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향후 변화 양상과 속도감이 더 빠를 것이라는 것과 그 향방감을 우리가 예측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심하게 꼬여버린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세대 간의 갈등과 첨예한 대립, 인구 절벽으로 인해 촉발될 사회경제적 생태계의 변화들과 부작용들 등을 고려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더 혼란스러울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불안정한 과도기의 한 가운데에 서 있음이 분명하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과 같은 지능정보통신기술이 기존의 산업, 경제, 사회 전반에 융합되어 새로운 세대로 진입하는 소위 4차 산업혁명으로의 과도기를 경험하고 있다. 급격한 변화의 중심에서 우리는 방향감각을 잃을 수밖에 없고,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 불안함은 쏠림현상을 만들어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시장에 현금 유동성이 좋아지면서 자산의 가치가 상승하고, 이에 따라 부동산이 폭등하면서, 너도나도 부동산 중개인이 되겠다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지난 2022년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생이 40만명을 넘으면서, 공인중개사 시험이 제2의 수능으로 불렸지만, 불과 몇 개월 만에 부동산 시장은 급변했다.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1년 동안 1, 2차 시험을 치러야 하는 공인중개사 시험에 뛰어들었지만, 시장은 불과 몇 개월 만에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응시생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급격한 변화는 불안과 조바심을 유발하고, 집단적인 쏠림현상을 촉발한다. 과도기에는 모두가 불안하고, 절박해지고, 또 조바심이 나기 마련이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위 카더라 통신은 우리의 지인 중 누군가가 소위 벼락거지나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매일 퍼나른다. 우리의 불안감과 조바심을 자극하는 소문의 실체를 찾아내면 대부분 쏠림 현상의 한가운데에서 향방감 없이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는 실체없는 대중의 아우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너무 진부한 결론이지만 현상 너머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직관이 필요한 시기이다. 피터 드러커는 격변의 시대에 가장 위험한 것은 격변 자체가 아니라 지난 사고방식(yesterday’s logic)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급격히 변화하는 현실과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 자체에 함몰되어서 불안해하기보다는 변화의 흐름과 양상을 읽어내기 위해 새로운 사고방식을 연습하고, 배울 시기이다. 쏠림현상 즉, 변화의 선점을 통한 부의 실현과 같은 맹목적이고, 신기루를 쫓는 굴종적 시각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시대와 기술적 변화가 내 삶에 미칠 파장을 예측하면서 내 생의 의미와 존엄 고찰할 수 있는 직관적 시각을 경도해야 할 때이다. 메타버스라는 첨단기술과 4차 산업 혁명을 논하다가 내리는 황당한 결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메타버스 시대의 도래가 던질 화두인 디지털 불멸, 디지털 자아 정체성 등과 같은 논의들을 고려한다면, 격변 속에서 경제적 신분 상승만을 꿈꾸면서 쏠림 현상의 한가운데 휩쓸리기보다는 주체적 시각으로 새로운 시대 속에서 자신만의 주체성 찾기를 위한 고군분투를 준비해야할 시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격변 속에서 부의 흐름을 찾고 선점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지만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을 누리면서 더 오랫동안 살아내야 할 우리들의 선결과제이자 내일의 사고방식(tomorrow’s logic)은 우리의 새로운 주체성 확립과 생의 의미 부여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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